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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옹기의 기원


    제주에서는 약 1만년 전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흙 그릇이 발견되었다. 굽이 작고 몸통이 확산된 듯한 이 토기는 외면에 굵은 긁띠가 돌려져 있어서 융기문 토기라고 불린다. 그후 3천년 전에는 1천 5백 년 전 사아의 빗살문 토기, 붉은간토기, 무문토기, 고내리식 토기가 있었다.
    제주 옹기는 타지역과는 달리 석요, 즉 돌가마에서 구워진다. 특히 양질의 점토를 생산 할 수 이쓴 제주 서부 지역세서는 도공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다고 한다. 실지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 인향동, 구억리 마을을 축으로, 주변마을에서 대대적 규모의 적업이 이루어져 왔다. 지금까지 밝혀진 가마터만 해도 40여 군데에 이르고 있으며 인근 마을에서도 계쏙 다른 가마터들이 발견되고 있다. 예전에 이 마을들에서는 주민들의 80% 정도가 가마와 관련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무릉리 검은굴


    제주의 전통 옹기의 제작 공정은 대부분 오랜 경험에 의한 직감으로 만들어 졌으며 성형 방법도 제주의 자연 환경 조건을 고려하여 제주특유의 형태를 가진 허벅류, 고소리 등이 제작되었다. 제주의 옹기는 크게 수분이나 화기를 취급할 수 이쓴 비교적 가볍고 약한 검은 그릇과 발효 및 저장 용기 등 견고한 용품으로 사용회는 노랑그릇으로 구분한다.
    검은굴은 시루, 지새허벅, 지새항고 같은 생활 용기들을 구워냈던 가마이다. 현재 대정읍 구억리 상동 속칭 '구석팟'이라고 불리는 곳에 위치한 검은굴이 현존하는 유일한 가마이다.

     

    가마터


    평지동 독소, 평지동 굴왓, 평지동 샛벵디, 좌기동 반대못, 인향동 구남물

     

    기와터


    인향동 기와터, 좌기동 포제동산

     

    인향동 와요지


    대저읍 무릉2리에는 '인향동'이라는 자연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의 주거지역 남동편에 는 속칭, '조롱물' 이라고 불리는 물통이 있다. 와요는 이'조롱물'이라는 물통의 남쪽 경작지에 있다. 형태는 단면이 n형태인 상태에서 길이가 길다. 전면은 평지하로 내려가 있고 측면은 지상에 노출 되도록 있다. 바닥면의 각도는 15도 내외이나 매립물이 많아서 정확히 알 수 없다. 천정 부분이 비교적 양호하여 각도를 측정한 결과 약 9-10도 정도로 비스듬하게 되어 있다. 지형은 서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데 5~8도 정도이다. 와요가 설치될 당시에는 이 지형을 이용하였던 거으로 이해된다. 노출된 와요의 주변 상황으로 볼때 화구 부분과 앞 부의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지표면에서 약간 파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와요 앞부분은 지표에서 약간 들어가 있고 끝 부분인 굴뚝 부분은 지상에 있다. 이 와요가 처음 발견된 1987년과 1989년 조사 당시에도 그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으나 지금은 화구 부분과 굴뚝(출입구) 부분이 일부 허물어져 있고 소성실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축조는 현무암 잡석과 진흙을 이용하여 반원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즉 넓적한 현무암 잡석과 진흙을 빚어서 벽과 천정을 쌓고 가마벽내부에는 흙을 발랐다. 천정은 지붕이 허물어짐을 예방하기 위해 돌과 돌 사이의 틈에 잔돌을 끼워 넣었다. 이처럼 현무암 잡석을 이용하여 축조된 와요는 타 지방에서는 알려지고 있지 않고 있다.
    가마의 외부 크기는 길이 1,480cm, 너비 350cm, 높이 230cm이고, 내부 크기는 길이 840cm, 높이140cm, 너비160cm 이다. 여기에서 생산된 가와의 종류들은 궁궐, 사찰, 주택 등에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암키와 수키와 등의 평기와들이며 암막새나 숫막새 들은 아직 발견이 안되고 있다.
    주변 상황으로는 동쪽 방향에 와요 작업 시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조롱물이 있고 남쪽 경작지 주변에는 작업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쪽편으로 기와를 보관했던 곳이 있었던 것 같으며 남쪽 50m 떨어진 곳에는 와공들이 살았던 가옥이나 작업장이 있었던 것으로 유추된다.